최근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가 종이 쇼핑백과 똑같이 생긴 가방을 출시하면서 화제가 됐다. 가격은 300만 원대, 겉모습은 200원짜리 종이 쇼핑백. 물론 진짜 종이로 된 건 아니고 가죽으로 만들어졌다(사진상으로는 절대 알아볼 수 없지만). 사실 라프 시몬스가 질 샌더(Jil Sander)에 몸담고 있던 12년도에 명품 종이 쇼핑백(이건 진짜 종이)은 이미 출시된 적 있기도 하다.

이런 문제적인 제품은 SNS에 가장 빠르게 퍼 날라진다. <보테가 베네타 신상 가방, 300만원>이라는 멘트와 함께 게시된 누가 봐도 종이봉투처럼 보이는 이 가방은 모든 패션 하우스를 대표해서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는다. ‘소비자를 얼마나 호구로 봤길래 저런 걸 파는 거지’, ‘싹 다 망했으면 좋겠다’ 같은 식의 댓글이 달린다. 반응이 뜨겁다 보니 브랜드 입장에서는 바이럴이 되니까 좋기도 하지만 브랜드 평판이 나빠질 우려가 있고, 대중은 이게 가죽인지 종이인지 프롱프뢰유인지 뭔지는 아예 관심이 없고 그냥 지켜보자니 배알이 꼴린다. 의미심장하다.

위는 보테가 베네타의 23 SS 사진이다. 놀랍게도 양말, 셔츠, 데님팬츠 모두 가죽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장난 친 게 아니라 진지했구나. 근데 왜?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시대에 대한 의복적 해석이라든가, 촉각과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 유발이라든가, 인스타그램으로만 옷이 판단되고 보여지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그냥 어그로 한 번 끌어보려 했다든가. 맞는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보는 사람 맘대로니까. 내가 디자이너의 의도에 완전히 놀아났든 말든 상관없다. 우리 소비자에게도, 그들 생산자에게도. 다 재밌자고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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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놓고 가상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옷들도 있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봉태규 씨가 이걸 입었는데 생각보다는 자연스럽다. 역시 정면에서 봤을 때 좀 충격적이고 옆에서 보면 그냥 팔랑거리는 게 달려있는 후디일 뿐이다. 이 옷이 최근에 가장 많이 바이럴이 된 케이스였던 것 같다.

또 미스치프(Mschf)의 아톰 부츠도 한몫했다. 이런 시도에 굉장히 열려 있지만… 진짜로 깜짝 놀라기는 했다. 그 덕에 수많은 아티스트의 관심도 받고 셀러브리티는 이걸로 컨텐츠도 만들고 하니 윈윈인 것 같다. 또 아예 거꾸로 신는 운동화나 일그러진 우리의 반스 같은 것들도 아주 멋진 시도다. 이런 신발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미스치프라는 브랜드가 패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머리에도 각인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충격과 재미를 한 번에 주면 무조건 기억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베트멍(Vetements)이 등장한 뒤부터 널리 퍼졌다. 사실 존재 자체가 밈이다. 브랜드 이름부터 프랑스어로 ‘옷’을 뜻하고, 그 ‘옷’이라는 단어가 옷에 떡하니 쓰여 있으니. 택배회사 DHL과 콜라보한 옷을 내기도 했고, 발렌시아가(Balenciaga)에 넘어와서는 이케아(IKEA)의 가방과 똑같이 생긴 가방, 쓰레기봉투와 똑같이 생긴 가방을 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스트리트웨어에서 스크린웨어(Screenwear)로의 이행을 앞당겼다.

럭셔리 하우스뿐만 아니라 센스 있는 몇몇 국내 브랜드들도 재밌는 옷을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몰리치(Molrich)가 보여주는 하찮은 옷들. ‘즐겁다’ 밈부터 ‘열림교회 닫힘’을 프린트한 옷. 딱딱한 글씨체의 한글로 어이없게 적혀 있어서 더 웃음이 난다.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를 '디제이(DJ) 오사무'로 변주하는 재치까지.

그리고 퍽댓너드샵(fuckthatnerdshop)의 이런 옷들. 애플의 ‘Think Different’ 캠페인 문구를 유쾌하게 오마주했다. 과거 비치 스케이트보드(Bitch Skateboard)가 연상되는 픽토그램을 귀엽게 그려 넣기도 했다. 근데 두 번째 사진의 모자는 진심으로 사고 싶다… 완벽한 색 배합이다. 역시 감이 좋아야 재밌는 것도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런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게 진짜 히트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웃음을 주기에는 확실하다. 멋있는 것보다 웃긴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인터넷 검색 트래픽을 늘리는 게 사업 실력인 만큼, 지하철에서 사람들 시선 트래픽을 장악하는 것도 중요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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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에는 웬만하면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없다. 화제가 되는 능력은 곧 성공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그리고 인스타그램 무드보드 계정의 대시보드에 오르내리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다. 어쩌면 가장 터무니없는 행동이 가장 주류가 되는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분 나쁠 때도 있다. 패션에 관심 없는 틱톡커들이 모델한테 쓰레기를 입힌 뒤 유명한 디자이너인 척 패션위크에 가서 주목받는 영상을 올리는 등… 패션 산업을 조롱하는 밈이 한때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들은 그들에게 보이는 것만 보고 다른 건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에 불쾌해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정말 이건 돈 놀이 그 이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조롱을 일삼는 이들이 마냥 잘못된 게 아니라는 반성도 든다. 사실 간단한데 말이다. 그냥 누구나 재밌으면 된 거다. 그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