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베르 드 지방시가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와 레이벤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우아하게 말아올린 머리에 커피와 크루아상, 마지막으로 나도 모르게 절로 흥얼거리는 문 리버의 멜로디까지. 아시겠지만,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오프닝의 오드리 헵번 이야기다. 채 해가 뜨기 전 노란색 택시에서 내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티파니 앤 코(이하 티파니) 매장 윈도우를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즐기는 이 짤막한 장면은 티파니를 극중 오드리 헵번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여성이 동경하는 브랜드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뉴욕에서 작은 문방구로 시작해, 누구나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주얼리의 대명사에 이르러, 오늘날에는 스트리트 패션과 조우하기까지. 200년 가까이 이어져온 티파니를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은 협업 에어 포스 1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티파니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1837년 뉴욕에 위치한 '티파니, 영 앤 엘리스(Tiffany, Young and Ellis)'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문방구가 티파니의 첫 발걸음이었다. 당시 25살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는 면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로부터 1,000 달러를 받아 뉴욕 맨해튼 259 브로드웨이에 터를 마련, 친구 존 버넷 영(John B.Young)과 힘을 합쳐 문구/팬시류와 수입 골동품을 판매하는 자그마한 매장을 동업해 운영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오픈 첫날 매출액이 4.98 달러였던 것은 브랜드 공식 웹사이트에도 기재되어 있는 유명한 일화. 이후 설립 2년 차부터 은, 시계, 도자기 등 보다 다채로운 고급 제품을 내보이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찰스 루이스 티파니

티파니는 얼마 지나지 않은 1840년대에 들어 미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로써 급부상했다. 1년에 한 번 '블루 북'으로 알려져 있는 우편 카탈로그를 발행해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아름다운 주얼리 제품을 소개하고, 프랑스 2월 혁명을 기점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 왕실과 귀족들로부터 최고급 보석을 적극적으로 매입해 미국 땅에서 판매했다. 이와 같은 마케팅 방식과 선구안적인 사업 운영은 당시 산업화와 새로운 교통수단의 등장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의 길에 올랐던 미국 내 많은 부호들이 자국에서도 휘황찬란한 주얼리를 마음껏 구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티파니는 자연스레 '다이아몬드 명가'로 입에 오르내리게 됐고, 차별화된 품질, 디자인, 고객서비스를 주축으로 뉴욕은 물론이거니와 미국 전역에 걸쳐 수많은 충성 팬층을 확보, 이는 브랜드가 다음 세기와 또 그다음 세기에도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단단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1902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티파니는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주얼리 브랜드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의 죽음 이후 100년이 조금 더 지난 오늘날, 티파니는 여전히 창립자의 유산을 받들어 브랜드를 운영한다. 아래의 세 가지는 200년 가까이 이어져온 티파니 역사에서 고르고 고른 가장 중요한 세 가지다. 이들은 티파니 브랜드의 영원한 기초가 될 터.

스털링 실버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주얼리 사랑은 '은'으로 계속됐다. 1851년 뉴욕 최고의 은세공사로 알려진 에드워드 C.무어를 영입하고 그의 사업체를 품으며 은 92.5%와 구리 7.5%로 이루어진 '스털링 실버'를 개발했다. 순은의 함유량에 따라 925 실버라고도 불리는 스털링 실버는 순은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높은 내구성을 갖추며, 이후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은세공 부문 최고 메달'을 포함해 총 8개 부문의 메달을 거머쥐었다. 미국 회사가 은세공 부문을 석권한 것은 티파니가 최초였고, 스털링 실버는 가치를 인정받아 업계 표준으로 제시되는 중이다.

은을 통해 주얼리 사업을 주력으로 삼은 시점에 맞춰 티파니 브랜드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1853년 공동 경영자의 경영권을 모두 매입한 것. 이에 회사 이름은 현재의 '티파니 앤 코(Tiffany & Co.)'로 변경되었고, 매장은 브로드웨이 550번지로 이전한다. 당시 새로운 매장 전면에는 9피트 높이의 아틀라스 시계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현재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 정문에서 뉴욕의 가장 오래된 공중 시계로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젬스톤, 그리고 티파니 다이아몬드

티파니는 가장 희귀한 젬스톤을 손에 넣고자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비록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형형색색의 컬러 젬스톤이 인기는 아니었지만, 찰스 루이스 티파니와 그의 보석 감정인들은 세상에 없는 특별한 젬스톤을 내놓기 위해 전 세계를 탐험하고, 주얼리 업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 열정이 어느 정도였냐면, 1887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프랑스 왕관 보석 3분의 1을 직접 구입하고 티파니 디자인에 세팅해 판매했을 만큼이다.

1876년 티파니에 합류한 닥터 조지 프레드릭 쿤츠는 그 중심에 있던 가장 중요한 보석학자다. 쿤츠는 1878년 남아프리카 킴벌리 광산에서 발견된 287.42캐럿의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1년간 연구, 절반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고도 총 82면 128.54캐럿으로 커팅해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현존하는 노란색 다이아몬드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1960년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가 디자인한 '리본 로제트 목걸이', 1995년 '바위 위에 앉은 새', 그리고 2012년 티파니 창립 175주년을 기념하는 목걸이로 세팅되어 현재는 뉴욕 5번가 플래그십 매장에 전시되어 있다.

티파니 세팅과 티파니 블루

결국 티파니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결정적인 이유, 1886년 탄생한 '티파니 세팅' 때문이지 않을까. 창립자의 고집과 장인정신이 깃들어 세상에 등장한 티파니 세팅이 현시대 우리가 익히 아는 웨딩 링의 시초이니. 완벽하게 세공된 6프롱 세팅을 기반해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는 다이아몬드가 밴드 위로 떠 있는 듯한 고급스러우면서도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는 자태는 140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한다. 티파니 세팅은 티파니를 단순한 주얼리 브랜드에서 벗어나 사랑과 헌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럭셔리 하우스로 나아가게 했음이 자명하다.

과거 블루 북에서 활용된 '티파니 블루'가 티파니 대표 컬러로 자리매김한 것은 티파니 세팅의 등장과 함께라고 볼 수 있다. 로빈스 에그 블루, 포겟미낫 블루라고도 불리는 이 컬러는 19세기에 유행한 '터코이즈 젬스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 터코이즈는 결혼식 하객에게 답례품으로 비둘기 모양의 터코이즈 브로치를 선물했던 빅토리아 시대 신부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젬스톤이다. 아무튼 티파니 세팅을 담아내는 티파니 블루 박스는 어마무시한 사랑을 받았고, 그렇게 브랜드의 상징 그 자체가 되었다. 발매 당시 매장을 찾아 티파니 블루 박스만을 구매하겠다는 요청이 쇄도했을 정도라고 하며, 찰스 루이스 티파니는 반지를 구매하면 무료로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박스만을 따로 판매하는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고 한다. 티파니 블루는 여전히 블루 북과 티파니 세팅의 박스 컬러로 활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쇼핑백과 광고 등 브랜드 가장 맨 앞에 나와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다.

| 역사와 대중문화, 그리고 티파니 드림

티파니는 오늘날 그 명성을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위에서 서술했듯이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주얼리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이 가장 주된 이유겠지만, 이들이 그 어떤 럭셔리 브랜드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온 것 또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티파니 초기 뉴욕 매장 전경

티파니의 시작은 1837년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미국이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오랜 역사와 동행했다는 것이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로 자리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상 최대 위기 중 하나로 기억되는 남북전쟁을 거쳤으며, 이후 넓은 땅과 풍부한 노동력을 기틀 삼은 급속도의 경제 성장 시기와 동행했다. 꾸준히 차별화된 주얼리 제품을 선보여온 티파니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많은 자국민에게 사랑받은 것은 물론, 몇 안 되는 미국 기반 고급 브랜드로써 백악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장 잘 알려진 일화로,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들 수 있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은 영부인 메리 토드 링컨에게 티파니 시드 펄과 금으로 장식된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을 선물, 영부인은 이를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와 초상화에서 착용하며 주목을 모았다. 한편,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5년 63번째 생일을 맞아 자신의 사위로부터 선물 받은 티파니 손목시계를 역사적인 얄타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착용했으며, 케네디 대통령과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서로에게 선물한 것,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선물로 받은 휴미더와 뮤직박스 또한 유명하다. 대통령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다. 백악관과 미국 공식 행사, 그리고 국빈을 위한 선물까지도 티파니의 제품이 사용되었고, 1885년에는 달러 지폐를 새롭게 디자인하며 모두가 티파니 디자인을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링컨, 루즈벨트, 레이건 대통령의 티파니

대통령과 영부인이 상류층의 관심을 끌었다면, 영화와 스포츠 등 대중문화는 전 세계 보다 많은 이들에게 티파니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이번 콘텐츠의 시작과 함께한 1961년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티파니가 많은 여성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브랜드로 각인되는 데에 강력한 결정타를 날렸고,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이 활약한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미국의 화려한 1920년대를 표현하는 데에서 티파니의 주얼리와 인테리어가 가감 없이 활용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더불어 NFL 수퍼볼, MLB, US오픈, PGA, LPL 등 수많은 스포츠 대회의 트로피가 티파니의 스털링 실버로 제작되고 있기도 하고, 그에 걸맞게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의 스타일링과 함께하며, 이제는 독보적인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로 그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사실 웬만큼 부자가 아니고서야 값비싼 고급 사치품을 마음껏 향유하는 것은 어지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 유명인이 착용하고, 어디 잡지에서 소개하건, 일단 가격이라는 높은 장벽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가 무섭기 마련. 티파니는 의심의 여지 없이 '럭셔리' 그 자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광범위한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남았다. 미국의 역사와 함께하고 대중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음이, 브랜드가 내세우는 '티파니 드림'이라는 가치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정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티파니는 저가형 서브라인을 전개하는 보통의 럭셔리 브랜드와 달리, 오직 Tiffany and Co. 브랜딩 하나로 적게는 수십만 원대부터 많게는 억대에 달하는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한다. 비싼 보석 제품을 구매할 수 없는 이들에게 티파니 상자 속 꿈을 담아주고자 서브 라인을 론칭 하지 않는 게 그들이 설명하는 티파니 드림이다. 티파니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누구나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주얼리 브랜드의 위치를 고수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사로잡을 수 있는 가격대를 제시하며 팬들에게 진정한 꿈을 선사해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티파니가 지금의 명성을 얻고 주얼리 업계 매출 1, 2위를 다투는 비결이다.

| LVMH와 에어 포스 1

티파니는 2021년에 이르러 패션 대기업 LVMH 품에 안긴다. 프랑스와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우여곡절과 파란중첩 끝에 성사된 인수합병은 주당 135달러, 총 162억 달러(한화 약 19조 512억 원)로 LVMH 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됐다. 당시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이번 인수합병은 전 세계 보석 시장에서 LVMH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 내 존재감을 확실하게 키울 것"이라는 포부가 담겼고, 티파니 곧바로 럭셔리 전반을 섭렵한 LVMH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주얼리 부문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실제로 LVMH는 티파니 인수 이후 주얼리·시계 부문에서 까르띠에와 반 클리프 앤 아펠 등을 소유한 리치몬트그룹의 뒤를 바짝 쫓게 됐다. 2020년 주얼리·시계 부문 매출 33억 5천만 유로에서 2021년 89억 6천만 유로를 기록, 같은 부문에서 약 100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며 업계 최고로 손꼽히는 리치몬트그룹과 진정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티파니의 슈프림, 파텍필립, 펜디 협업

현시대 LVMH가 패션 시장에서 행사한 영향력에는 단연코 '스트리트 패션'과 '협업'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티파니 또한 그들 품에 안긴 이상 두 키워드와 결부될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사실 이전의 티파니에게 협업이라는 개념은 엘사 퍼레티, 장 슐럼버제, 팔로마 피카소 등 혁신적인 디자이너와 함께 디자인한 주얼리를 내보이는 것 외에는 익숙지 않았다. 티파니는 LVMH 품 속에서 브랜드의 상징을 적극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브랜드와 적극적으로 호흡을 맞춰나가기 시작했고, 슈프림과 함께 제작한 박스 로고 티셔츠 및 스털링 실버 악세사리 컬렉션, 티파니 블루로 장식된 클래식 파텍필립 노틸러스와 펜디 바게트 백, 다니엘 아샴과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나이키 에어 포스 1은 티파니의 가장 최신 협업이자 첫 번째 스니커 제품이다. 신발의 이름에서부터 악세사리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티파니의 상징이 가득한 게 특징. 티파니 블루와 은은한 올오버 스우시 패턴으로 꾸며진 상자가 신발을 채 보기도 전부터 설렘을 만들고, 이를 열면 기다리는 올블랙 에어 포스 1은 티파니 블루 스우시와 실버 힐 장식으로 고급스러움을 뽐낸다. 마지막으로 스털링 실버로 제작된 호루라기, 슈혼, 듀브레, 브러쉬 등이 협업을 완성하기도. 티파니와 나이키는 이번 협업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고자, 협업 에어 포스 1의 컬러웨이를 반전시킨 F&F 모델과 무게 약 10kg에 달하는 스털링 실버 슈박스 또한 제작하기도 했다.

티파니 x 나이키 에어 포스 1 컬렉션

티파니 x 에어 포스 1은 한화 약 50만 원대에 발매 후 수백만 원의 리세일 프라이스에 KREAM과 StockX 등 한정판 스니커 거래 중개 플랫폼에서 거래 중이다. 뜻하지 못한 두 브랜드의 만남이자 티파니의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가득 담겼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가격. 혹자는 이번 협업이 티파니 브랜드의 명성을 낮춘다고도 이야기하지만, 티파니 상자 속 꿈을 담아주고자는 '티파니 드림'의 2023년식 방법 중 하나라고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티파니 드로우 바로가기

티파니에서 에어 포스 1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