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시장에서 협업의 힘은 강력하지만, 이제는 조금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한 브랜드가 타 브랜드 혹은 아티스트 등과 힘을 합치고 새로운 아이템을 선보여도, 왜인지 모르겠으나 보았던 것을 또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아가 종종 지겹기도 하다. 심지어는 럭셔리 컬렉션과 런웨이에서 스우시와 쓰리 스트라이프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는 만큼, 놀랄 만큼 신선한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만 같다.

무분별한 협업에 조금은 피로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미우미우 Y2K 2.0의 대미를 장식한 '뉴발란스 574', 예가 야심 차게 내보인 '이지 갭', 슈프림과 버버리의 공식적인 만남과 팔라스 x 캘빈 클라인. 이들은 지난 몇 달 동안 꽤나 흥미로웠고, 동시에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여기,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자크뮈스와 나이키의 만남은 위 몇 가지 예시들과 마찬가지로 눈여겨볼 만한 특별한 협업이지 않을까.

|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그리고 자크뮈스

1990년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오늘의 주인공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농부 부모님 덕에 유년 시절을 자연 속에서 보낸 그는 2009년 18살이 되던 해에 '패션의 도시' 파리로 향하고 ESMOD에 입학해 패션과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패션을 마음먹은 자크뮈스지만, 사실 처음부터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는데, 그는 '옷'보다 '이야기'에 더 끌렸던 사람이고, 그에게 있어 패션은 한 편의 영화였다. 그런 자크뮈스가 본격 패션을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터. <보그 이탈리아>를 통해 스티븐 마이젤이 포착한 프랑카 소차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라고 한다.

ESMOD에 입학하고 겨우 한 달 만에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시련이 찾아온다. 그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4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 것. 한동안 큰 충격에 휩싸인 자크뮈스는 곧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를 론칭한다. 브랜드명은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을 따와 지은 것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철학 또한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내는 것으로 귀결된다. 자크뮈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으며, 만약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자크뮈스도 없었을 것이다. 자크뮈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나이키 스니커 '에어 휴마라'

자크뮈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나이키 스니커 '에어 휴마라'

어린 시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와 그의 어머니

이제 갓 스무 살에게 무슨 돈이 있을까. 아끼고 아낀 최소한의 비용으로 컬렉션을 만들어 나아가기 시작한 초기의 자크뮈스는 여유롭지 못한 재정상황에 어쩔 수 없는 미니멀리즘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조금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가운데 그를 특별히 눈여겨본 이가 있으니, 꼼 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다. 도쿄의 한 쇼룸에서 자크뮈스의 세 번째 컬렉션 피스를 발견한 레이는 남편이자 꼼 데 가르송의 CEO이자 도버 스트릿 마켓의 디렉터인 아드리안 조프에게 그를 소개한다. 이후 자크뮈스는 조프를 설득해 낮에는 파리 CDG 숍에서 세일즈로 일하고, 밤에는 디자인 작업에 열중해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2012년에 22살이자 브랜드 운영 3년 차 만에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함께 파리 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인다.

자크뮈스는 브랜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현실의 개념을 컬렉션에 반영하며 변함없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파리지앵'으로 불리는 것을 절실히 거부하고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 출신임을 내세우며, 농부 부모님과 함께 자연을 거닐며 보고 자란 풍부한 색감을 컬렉션 전반에 주입해 넣는다. 누군가 "농부 집안 출신이니 패션이나 뷰티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고 하면, "농부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가장 시적인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그는 시골에서 자란 것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모방할 수 없는 매력적이고 독보적인 브랜드를 운영한다. 예컨대 빽빽한 밀밭 사이로 구불구불 뻗은 좁은 런웨이, 발랑솔의 드넓은 라벤더 밭을 배경으로 삼은 쇼는 모델과 함께하는 각 피스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보는 눈을 절로 즐겁게 만들고, 그의 감각이 담긴 다채로운 사진과 공사 구분 없는 독창적인 콘텐츠로 채워진 인스타그램은 자연스레 '팔로우' 버튼에 손이 가게 만든다. 무엇보다 자크뮈스는 지난 몇 시즌 동안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미니백 열풍에 불을 지핀 장본인으로 유명한데, 그렇게 치키토와 밤비노 따위의 핸드백이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자리하며 여전히 많은 여성들의 '잇템'으로 사랑받고 있다.

자크뮈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나이키 스니커 '에어 휴마라'

@jacquemus 인스타그램

자크뮈스가 잠시 떴다 어느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비록 이제 막 30대 초반에 접어든 젊은 피지만, 동시에 패션 신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프랑스 파리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베테랑이기도 하다. 게다가 LVMH나 케어링 등 패션 대기업에 속하지 않고 여전히 단독 브랜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옷을 직접 생산해 팔고 있다. 그렇다고 브랜드가 인기만 몰고 판매 실적이 저조한 것도 아닌데, 일례로 2022년에 2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며, 이를 위해 최근에는 전문 CEO를 선임하기도 했다. 자크뮈스는 자신과 브랜드 자체의 영원한 뮤즈인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테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할 테다.

| 자크뮈스의 첫 나이키 스니커, 에어 휴마라

과거 큰 영광을 누린 디자이너 브랜드를 단숨에 제치고 최고 인기 반열에 오른 신인이기에, 그 트렌드에 걸맞은 스포츠웨어와의 협업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크뮈스 x 나이키는 어딘가 신선해 보인다.

나이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주요 브랜드, 이를테면 버질 아블로의 오프 화이트 및 루이 비통, 킴 존스의 디올, 그리고 사카이, 엠부쉬, 마틴 로즈 등은 '스트리트웨어' 내지는 '해체주의' 등의 커다란 키워드로 묶을 수 있기 마련인데, 요컨대 자크뮈스는 이들과 꽤나 거리감이 있음에도 나이키와 잘 어우러진다. 자크뮈스가 직접 협업에 대해 말하길, "나는 항상 빈티지 ACG와 90년대 나이키 캠페인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이와 같은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감각적인 디테일과 중성적인 컬러를 활용해 여성 운동복을 디자인하였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이키 스니커인 '휴마라'에 나만의 해석도 더하였다". 나이키 또한 자크뮈스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데, 스포츠 문화를 확장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스포츠 문화를 재정의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크뮈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나이키 스니커 '에어 휴마라'

그렇게 약 2년의 작업 기간을 거쳐 탄생한 컬렉션은 두 가지 컬러웨이의 에어 휴마라를 중심으로 드레스, 스커트, 후디, 쇼츠, 브라탑, 버킷햇 등으로 꾸려졌다. 자크뮈스의 센슈얼한 감각과 나이키의 뛰어난 기능성이 조합돼 완성된 각 아이템은 신체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아 모두가 착용할 수 있게끔 제작되었으며, 에어 휴마라의 경우 남성 또한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사이즈로 제공된다. 코트 위는 물론이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손색없는 멋있는 스타일링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자크뮈스와 나이키의 협업은 지난 6월 28일 자크뮈스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공식 발매됐다. 각각 패션과 스니커 신을 주므르고 있는 두 브랜드의 만남인 만큼, 발매 시간에 맞춰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이에 덩달아 사이트가 마비돼 제품 구매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자크뮈스의 '찐'팬들은 이미 하나씩 마련해 놓았을 정도. 당시 발매를 놓쳤다고 아쉬워하기에는 이른데, 오는 8월 5일 오전 10시 나이키 코리아 SNKRS 페이지에서 국내 공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두 가지 에어 휴마라는 물론이고, 어패럴 라인 또한 준비되어 있는바. 하단 탭에서 자세한 발매 정보를 확인하고 구매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